젊은 과학도가 ‘파스퇴르’를 만나고 놀란 이유

By 이 충민

100년 전, 한 프랑스 대학생이 기차에 올라탄 후 옆자리에 농민처럼 생긴 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신앙이 있는지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이런 시대에 이렇게 뒤떨어진 물건을 믿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믿는데 당신이 믿지 않습니까?”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런 우매한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제 건의를 듣고 묵주를 던져 버리세요. 과학적으로 해석해드리죠.”

노인이 말했다. “과학이요? 저는 과학을 잘 모르는데 당신이 나에게 해석해주면 좋겠군요.”

학생이 말했다. “이것은 한두 마디 말로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주소를 남겨 주시면 당신께 책을 보내드릴게요. 당신 스스로 보면 됩니다.”

노인은 옷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학생에게 주었다. 하지만 학생은 명함을 받아 들고 얼굴이 단번에 빨개졌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명함 위에 ‘루이 파스퇴르, 파리 과학연구원 원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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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었던 과학자

이 학생이 만난 사람은 19세기 유명한 과학자로 세계 일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루이스 파스퇴르(Luis Pasteur, 1822-95)였다.

루이스 파스퇴르는 각종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유기체와 발효의 조절을 설명한 최초의 학자였으며, 더 나아가 박테리아를 연구함으로써 수많은 병원체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했고 광견병, 디프테리아, 탄저병 등 백신을 발달시켰다.

또한 저온살균법, 살균소독의 발달도 그의 연구에서 온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수명을 연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였으며 과학자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라고 불렀다.

푸이 르포르 목장에서 탄저병 백신의 효능에 관한 공개적 실험을 한 파스퇴르(Topic Corbis)

특히 그의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반론은 그를 과학과 의학사에서 더욱 빛나게 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 그리고 생물로 진화된다는 화학진화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수 천년 간에 걸쳐 절대 다수 지식인과 과학자들에게 신봉되어 왔다. 특히 당시는 프랑스 과학자 푸셰(Felix Pchet, 1800-72)의 실험 때문에 유기물질이 산소와 접촉을 하게 되면 물질에 내재했던 특수한 원리에 의해 생물이 자연발생 한다는 진화론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물리학과 화학 방법론을 생물학에 도입해 자연발생에 대한 정밀한 반증실험을 함으로써 기존의 학설이 생물발생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했다.

그는 공기 중 미생물 포자가 들어가지 않도록 플라스크를 막으면 고기국물에서 어떤 벌레나 생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간단한 실험을 결과로 ‘생명은 반드시 생명에서만 나온다’는 ‘생물속생설’을 수립했다. 물론 이는 더 나아가 소독이나 식품의 장기 보존방법을 이론적으로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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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가 생물의 자연발생론과 진화론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당시에 모든 생물학계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인내과 꾸준한 실험으로 대부분 학자들이 갖고있는 자연주의적 생명기원에 관한 생각을 버리게 했으며 아울러 병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도 포기하도록 했다.

파스퇴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그의 신앙은 더 깊어졌다. 그는 가끔 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그는 말했다.

“많은 것들을 알면 알수록, 나는 농부의 신앙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모든 것을 알았다면 나는 농부 아내의 신앙을 가졌을 것이다.”

이 말은 그가 과학을 깊이 연구할수록 신을 훨씬 더 단순히 믿었을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