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코리아] 269회-1 수수와 모모의 한국 체험! (수원편)

수원 화성(華城)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6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현재 수원으로 이주시키면서 축성되었다. 화성 축조 당시 김홍도와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외측에 성벽을 쌓고 내측에는 흙으로 메우고 화강석과 벽돌을 함께 사용했다. 축성 당시 거중기가 사용됐으며 과학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팔달문(八達門)과 장안문(長安門), 화홍문(華虹門)과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등의 건축물이 있다. 화성은 1963년 사적 제3호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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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에 완공된 방화수류정은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정자의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 때문에 시각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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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동장대華城東將臺)

연무대라고도 하는 이곳은 3단으로 쌓은 대가 있고 바닥을 돌로 깔아 말을 타고도 장대에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장대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의 합각기와지붕이다. 건물 주변에는 터를 넓게 잡아 동서 80보, 남북 240보 규모의 조련장(操鍊場)을 만들었다. 1795년(정조 19) 8월에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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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대 앞 활터에서 시민들이 국궁을 체험할 수 있다.

중국 유학생 수수와 모모도 활쏘기를 하고 있다.

사서(史書)에 중국은 말을 잘 타고 한국은 활을 잘 쏘며 일본은 칼을 잘 썼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정조 역시 활을 잘 쐈다고 전해

진다.

활터 안쪽 건물에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신궁(神弓) 정조의 초상이 걸려 있고 갖가지 한국 활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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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蒼龍門)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19) 10월에 만들어졌다. 창룡은 청룡을 의미하는데 풍수지리상 좌청룡으로 동쪽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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